Real 'Songkran' in Thai <4>
뜨거운 쏭클란의 열기가 끝났다. "올해도 300여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 타이인이 말해 준다. 북부 이 도시엔 쏭클란의 마지막 저녁 천둥을 동반한 소낙비가 한참 내렸었다. 아마 그 거센 비바람으로 많은 사건 사고가 방지되었을 것이다. 쏭클란의 마지막 성수를 기대했었을 유흥업소도 비교적 한산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많은 희생과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 거친 열기를 계속 이어나갈 것 같다. 그 어느 타이인도 쏭클란의 불용성과 폐지를 얘기하지 않는다. 거리에서 렌남과 더불어 격정적인 음주가무를 해 나가며 행복해 한다.
둘 모두 귀향을 멀리하는 듯 하다. 러이끄라통 혹은 쏭클란 등 큰 명절에도 그들은 항상 이 도시에서 함께 한다. 한 번도 그들이 귀향했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다. 둘 모두 집과는 일정 거리를 두는 삶을 현재는 유지하는 듯 하다. 그들은 한 직장에서 근무한다. 둘의 만남도 직장동료눙藪?가능했고, N은 M과의 '휀깐'이 시작되기 전, '푸차이' 휀깐을 유지하였던 이성애자의 히스토리를 가진 양성애자이기도 하다. B는 이러한 레즈비언의 '휀깐'의 릴레이션쉽은 어느 시점엔 대부분 정리된다고 한다. 양성애 혹은 여자役의 이는 결국 일반적인 가정제도 속에 편입되는 것이 대세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N과 M 모두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이 둘은 6,000B씩 가량의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다.(합 12,000B) 한 때 M은 야간 업소에서 웨이터(?) 생활 등을 겸하며 투잡을 보유하기도 하였다. 힘들어서 지금은 주간에만 직장생활을 한다.
하지만 B가 없는 이 곳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더이상 길게 이어나가지 못한다. 함께 오늘 밤의 '빠이티여우'를 '추언'(권유)할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나 역시 독립적으로 그들과의 시간을 이어나가기엔 내공이 한참 부족한가 보다.
산골 도로를 달린다. 드문드문 나의 옆을 스쳐가는 모터싸익과 차량들.. 빨강 썽태우와 달리 아주 구닥다리 노랑 정기 썽태우편의 승차칸엔 제대로 창문이 달려 있을리 없다. 승객들은 모든 물을 그대로 뒤집어 쓰며 달리고 있다. 그리고 동네 아해들과 청년들을 실은 픽업 전투 차량들에서 뿌려대는 물들..
90여키로의 산골 마을엔 50여개 가량의 렌남 바리케이트가 존재한다. 작심을 하고 오늘은 모든 물을 맞으며 덕담을 주고 받는다. 계곡의 물을 이용하는 바리케이트는 아주 살이 에는 듯한 짜릿함과 한기를 전달한다.
이미 이 산골 잘나가는 청소년들과 어른들은 큰 도시로 일찌감치 진출했다. 이 곳에 남겨진 이들은 아해들 그리고 차량이 부족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 장년 노년층만이 잔류해 있다. 정상부 근처엔 일반 외부 차량이 제대로 지나갈리 없는 날이다. 1시간 동안 3-4대 가량 될까. 나의 모터싸익이 들어서자 지루한 그들만의 렌남에 이력이 난 60-70여 명의 동네 사람들이 열광한다. 그렇다. 난 오늘 이 곳 렌남의 단독 주역으로 발탁되었다. 어설픈 공동 조역이 아닌다.^^
중간 중간 강렬한 '쩡따'를 때리는 어여쁜(?) 산골 처자들이 이끌고, 권하는 데로 연거푸 술도 마시며 함께 대로변에서 야사시한 '땐'도 함께 즐긴다. 열광한다. 이런 호사(?)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놀며 마시며 달리며 하루를 보낸다.
정말 쏭클란은 끝났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산골의 童心엔 아직까지 그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 산골에선 쏭클란이 공식 일정보다 2-3일 일찍 시작하여, 끝난 뒤에도 1-2일 그 희미한 온기가 지속된다. 간혈적인 렌남의 국지전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쏭클란이 끝난 다음 날, 고장난 차량을 되찾기 위해 다시 이 곳으로 발걸음이 닿는다. 물총을 들이대자 순진한 아해들은 모두들 배시시 웃는다. 어설퍼 보이는 이방인의 모습이 가소로운가 보다.^^
산골로 향해라. 그 곳에서 또 다른 타이 그리고 타이인과 대면하게 될런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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